벌써 얼마나 지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고양이들은 좀 암된 편인데..
그나마 암되지 않은 고양이는 영악한 암컷인 환희 뿐이라서
다른 두 녀석들은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만 좀 낯설어도 다들 숨고 난리다.

그래서 내 친구가 우리 집에서 지내던 며칠 동안
산타 희동 두녀석들이 좋아하던 통조림도 마다하고 숨어있는 바람에
우리집은 마치 고양이 한마리와 사람 한명이 사는 집처럼
그렇게 이상해져버렸는데.

그러고 한 며칠 지내던 어느 날
숨어만 지내는 비만 희동이가 너무 안 돼 보여서
나 혼자 물건 사러 나갈 때 희동이를 데리고 나갔다.
내 친구가 불편해서 그런 거라면
그냥 나랑만 있다면 그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론 바람도 쐬게 할 겸..
하지만 바람이라니..
고양이에게 바람을 쐬게 한다.. 라니..
이 생각이 문제였다.

한쪽 팔엔 비만 고양이를 안고,
한쪽 팔엔 화장지랑 생수병 같은 걸 들고 낑낑대며 빗속을 걸어오던 사람의 품에서
비만고양이가 뛰쳐나왔다.
뛰쳐나와선 순식간에 길가에 있던 트럭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며칠간, 낯선 사람의 방문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고양이가
다시 길거리라는 낯선 공간을, 불편하게 안긴 채 지나오다보니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간 것이다.
바보..

다행히 어디 다른데로 숨어버리지 않고 그 트럭 아래에만 꼼짝 않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날씬한 내가 트럭 밑에 기어들어가서 겨우 빼내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 잃어버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못된 녀석같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며칠간의 맘고생으로 볼살이 쏙 빠져버린, 원래는 비만고양이인 희동>


요전에
내가 고양이 셋과 같이 사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우리집(보통 본가..라고 하던가 a)에서
이웃에서 쥐잡는 데 쓰게 고양이 한 마리 달라고 한다고.
또는 집에서 키우게 고양이 한 마리만 내려보내라고.
그런 식으로 날 구슬렸다.
물론 대답은 'no'였지만 그래도 막상 한녀석을 보내야 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보내야 할까..
생각을 해보긴 했다.

사람들한테 귀염받는 걸 의식할 줄 아는 영악 환희..
자기 기분나쁘면 아무데나 더 심하게 토해버리는 못된 습관이 있다.
결국 미움 받을 꺼야..
화장실 정말 더럽게 쓰면서 온 집안에 모래를 흘리고 다니는 산타..
털결이 아무리 좋아봤자, 무서워하는 척 하면서 뺀질하게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녀석.
결국 미움 받을 꺼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격 좋고 예쁜 희동이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깐.. 내가 널 정말 좋아한다고 해도 막상 보낸다면 널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얼마전에 집에 내려갔을 때도 식구들이 고양이 타령을 했다.
하지만 나한테만 성격 좋은 예쁜이지, 알고 봤더니 이렇게도 암된 우리 희동이..
어디 다른데로 보낼 수 있을리가 없잖아..


...


앞으로 낯선 사람들을 자주 자주 만나게 해서
녀석을 강하게 만드는 수 밖에 없겠어.
그러니깐 탈감작..
Posted by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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