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2003년 무렵의 일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아이리스 장이 쓴 남경대학살 관련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거.

글쎄, 역사상 언제든지 있어왔을 법한 잔인한 사건 하나하나들 보다는 그냥
그 큰 도시에서..
사람들이 자기 한 몸 가리고 숨어 있을 곳이 없었을 거라는 상상이..
(차라리 이몸이 새라면, 이몸이 시멘트 기둥이라면, 이몸이 한그루 나무라면, 이몸이 개미라면)
내 상상이 사실일지 어떨진 모르지만 왠지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게 참 무서웠다.

그래서 그 때 당시
'언젠가 꼭 한번 그 난징거리를 걸어봐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이걸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얼마전 서울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도중에 발생한 중국인 유학생들의 한국인 폭행 사건 후
인터넷 게시판에 달리던 비난 댓글 중에서
'남경대학살'얘기까지 거론되는 걸 보고서야 다시 기억이 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굳이, 한국인 여행객들은 대충 보고 지나가는 남경으로 놀러 올 생각을 하게 된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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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장에 대해서 다시 찾아봤더니 이 사람,
2006년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남경대학살에 대한 연구(?)때문에 일본우익들에게 끊임없는 살해위협을 받으면서 살아오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한 거라고 하는데..

살해위협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때문에?
아니아니, 그런게 아닐 수도 있지.
그러니깐 이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인간성과 맞부딪쳐온 사람들..은
(뭐라고 해야 하나..)
어딘가 스스로 같은 인간이기를 참을 수 없어하는 그런 분위기랄까..
그런게 있는 거 같다.

비슷하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온 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지은 의미요법창시자(?) 빅터프랭클도
결국 자살했지.
빅터프랭클 말고도 아우슈비츠 생존자들 중에는 이후 자살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결론은..
고작 일본우익의 살해위협에 그녀가 져서 자살을 한건 아닐거라구.
어차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깐 잘 이해는 안되지만...

아무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기념관 자체는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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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큰 규모로 만들어두긴 했는데
손문(쑨원)의 묘지라는 중산묘도 그렇고 난징대학살기념관도 그렇고..
그다지 매력적인 장소는 아닌게 분명..


설명하는 언어가 일본어,중국어,영어로만 돼 있기도 했고;;
내용은 어차피 책에서 이미 본거라서 그냥
관람하고 있는 외국인과 중국인들의 반응만 지켜봤다.




그러니깐
많은 사람들이 그저 체스판의 말 하나가 돼서 움직여야 할 때
본래 그 게임은 말을 옮기는 손의 주인들끼리 하는 게임일테고
난징에서 6주동안의 희생자 수가 300000명이라는 것 자체만 중요하게 여길 체스게임 당사자들..
그 사람들의 잘잘못에 대해선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30만 개개인의 사건을 되새김질 해보고 싶었으니까 난..
그러니깐 그 체스판의 말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다구.
실제 전투현장은 결국 개인적인 사건들로 이뤄지는 거니깐.
(라이언일병구하기의 초반 10분처럼)

실제 개인 대 개인의 범죄를 저지른 당시의 일본군인들은
그 후로도 자기 행동에 대해 별다른 개인적 책임을 지지 않고 살아갔을텐데
어떤 사람은 그래도 죄책감으로 괴로웠을테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런 불편한 기억을 외면하려고 했을테고
어떤 사람은 그 상황을 진심으로 즐겼을테고
(1937년 당시 일본에선 난징에서의 살육에 대해 마치 게임결과 알리듯 열광하는 듯한 신문 기사도 많았다)

아무리
죄가 미운거지 사람을 미워해선 안된다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사람을 미워해선 않는다는 분위기로만 흐르면서
'당신이 대체 무슨 죄가 있냐, 당신도 역사의 피해자다'라는 식의 옹호만 하다가는
사람 뿐 아니라 죄조차 미워하지 않는 바보가 돼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또 했던 그대로 되풀이 하게 될수도 있으니깐.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이성의.. 껍데기같은 가벼움이 폭로돼 버렸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해서 끝까지 계속 확인하는 노력은 필요한 거잖아.

나 역시 상황이 닥치면 70년전 난징에서의 일본군인들같은 사람..
그러니깐 '역사의 피해자인 가해자'가 돼 버릴 수도 있는 거니깐
그래서
죄는 죄대로 분명하게 정리하고
정확히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같은 인간에게 대체 왜 그렇게 가혹했는지
똑바로 쳐다보도록 노력해야 할테고.


한국만 해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들어와서 명령이라는 말을 내세워 광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죽인
(잔.인.하.게. 죽이라는 명령같은 건 원래 없었을 것이다.)
계엄군들에 대한 담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그 일을 돌아보는 건
한편으론 괴로울테고
한편으론 귀찮기도 할테고
한편으론 어떤 방식으로 자기 행동을 돌아봐야할지 모를테니깐
사회공론화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었던 문제 같은데
그 풀어야 할 매듭을 안 풀고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탄핵집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난에 뿔난 어떤 의경도
자기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도 생각안하고
이런↓ 변명, 자기변호나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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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받고 짜증나는 군대생활..
물리력을 사용할 권한이 당당히 있고..
자기 행동의 책임은 역사가 대신 져 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70년전 난징에서 침략자 쪽이었다면 대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아..
전시관 제일 마지막에 '12초'라는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1937년 12월 31일부터 약 6주동안 30만명의 사람이 살해됐다는 건
당시 남경에서 12초당 한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말이 되니깐
그 의미를 살려서 만들어진 공간인데..
그 전시실 지나는 할머니랑 어린이들은 뿅~ 소리가 재밌다고 웃고 난리였지만
(뿅 소리는 12초를 알리는 알람소리)
그래서 더.. 좀 그렇지




그리고 완전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기념관을 통해서 중국이 얻고자 하는 건 애국의식고취 같은 게 아니라
중국에 미안한 감정을 가진 일본인들(을 통한 이득)을 늘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70년전에 죽어버린 자기 조상들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런 실용적인 쪽을 택하는게 중국인이라는 사람들인 거 같고..
(작년에 난징대학살에 대한 영화를 만든 어떤 외국인 감독이 중국정부의 항의를 받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정부의 항의 이유는, 현재로서 중국내의 반일정서 고취는 곤란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말할 나위 없는 장사꾼의 나라 중국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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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이거 좀 봐!!
희생자 수를 각국의 언어로 표기해 놓은 건데
한국어 지못미 ㅠㅠ
30만이라고 써야 할 걸 300천이라고 써놨잖아;;;;

아무리 지금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음식폐기물을 돈까지 주고 얻어오려고 아부를 하고 있고
아무리 몇개월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라는 인간이
한국어 오렌지를 영어 아륀쥐라고 말하는게 옳다는 둥 난리를 피웠다지만
그렇다고 여기 중국에서까지 한국어 숫자를 영어식으로 써둔 꼴을 봐야하나..;;

그래그래 다 좋다구..
그건 어차피 여기 사람들이 한국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테니까..
호텔에도 한국돈 환율은 거의 안나와 있고..

사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만 해도
필리어스 포그의 여행 경로중에 중국 다음은 바로 일본이다 ;;
(다들 한국만 미워해 ㅠㅠ)






아무튼 남경에서만큼은 그래서
한국인이 'I'm Japanese'라고 말해서 득볼 일이 별로 없을 듯..
그보다는 가능한 열심히 한국인 티를 내는 게 더 낫겠지 ㅎ
Posted by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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