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미쳐

etc... 2008. 4. 19. 00:43

퇴근 후 집에 거의 다 와서 창문쪽을 올려다보면

날이 어둑어둑하거나 날씨가 궂거나 하지 않은 이상

산타나 희동이..가끔은 환희도

창틀위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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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밖을 내다보는 건지 나를 기다리는 건지는 알수 없는 거지만

시간상 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그러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내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먼곳만 보는 녀석들한테 "

" '나 지금 바로 밑에 있다~'라는 제스쳐를.."

"가급적 크게(알아봐야 하니까) 해서 녀석들 주의를 나한테로 돌리기도 한다."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땐 조심하기도 하지만..ㅎㅎ"


..내가 집 바로 밑에까지 왔다는 걸 알게 된 녀석들은

현관까지 금방 들어올거라는 것도 다 아는 모양인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10여초전까지만 해도 창틀에 있던 녀석들이

현관 바로 앞 내 발치에서 내 얼굴쪽을 빤히 쳐다보면서 앉아있다

그렇게 쳐다본 다음에 뭐 예쁜짓을 하는 건 아니고

또 그대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

(대체 머하자는거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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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냥 우리집 고양이 녀석들의 단조로운 삶 속에서

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것도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는 거 같아서

난 그게..

그러니까 좋지가 않고

..싫다.

우리집 고양이녀석들이 안 그러면 좋겠다.


행여나 어린왕자의 여우처럼

우리고양이들한테는 저녁 7시~7시30분경이 바로 설레임을 준비할 시간의 기준이 돼 있는 거라면..

가끔씩 내가 늦을 때라든가..

하루이틀 집을 비울 때라든가..

그럴 때 녀석들은 오지도 않을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깐.


그래서 그냥 녀석들의 나른하고 느긋한 시간속에서

내 출퇴근시간이 전혀 중요한 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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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시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그...것을 기다린다고 시를 썼지만

그런거 없이 그냥.. 습관처럼  뭔가를 기다릴 뿐이라 해도

기다린다는 거 자체만으로 목이 타게 돼 있달까.


만화 백귀야행 중 '기다리는 사람들'편에서

버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자기 죽은 줄도 모르고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장면.

기다린다는 건 왠지 영혼(?)의 영역까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갈증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참..

무서울 정도.


만석오빠(ㅎㅇㅎㅇ)가 아녔으면 아마도 안봤을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그냥 우리 사람들 모두는 뭔지도 모르지만 막연하게 뭔가를 기다리면서 살아가니깐..

그렇게 내가 우리 고양이들을..

막연하게 뭔가를 기다려야만 하는,, 사람들만의 간절한세계로 끌어들이는 거 같아서

그게 참 싫다구.






아참!

..

거의 20여년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했을 때

그걸 본 일본젊은이들(그때의 젊은이들이라면 지금은 3,40대? ㅎㅎ)은

그후로 좀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됐다고 한다.

하늘에서 라퓨타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깐 ㅎ


그냥.. 이 포스트를 보신 분들도

지나다니다가 혹시나 가끔씩 창문쪽을 올려다본다면

창문구석에서 몰래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거라구요.

ㅎㅎ

Posted by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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