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etc... 2008. 5. 18. 01:56





어느날 아침 일찍 창밖을 내다보니 고양이 두녀석이 길 한가운데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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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히?

다른 고양이들이 자러들어갈 시간인데 자기들끼리 유유자적 모험같은 걸 하는 거라고 사람본위로 생각하진 않았다.

 '먹이를 찾아서 다른동네에서 흘러들어온 거겠지'
 '그 먹이라는 게 정말 절실할 수도 있겠지'
 '몸은 또 왜 저렇게 말랐대'
 
이렇게 생각을 했고 또 1분만에 뛰어나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이 굶주린 듯한 두 녀석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뛰어나가지는 않았다.

그건..
-갑자기 뛰어오는 내 모습은 녀석들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먹이를 녀석들이 지나간 곳에 둬 봤자 이 동네 토박이가 아닌 녀석들이 다시 돌아와서 그걸 챙길 수 있을리 만무
-행여 돌아와서 먹는다는 뜻밖의 상황이 전개 된다한들 이 먹이는 그저 녀석들이 겪는 배고픔의 유예기간만 늘릴뿐






인도쪽인지 아랍쪽인지 정확하진 않은데
일단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렸다면 이후 그 사람 목숨을 끝까지 책임져줘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다고 느낀적이 있다.

목숨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심뽀도 아니고..
대체 무슨 적반하장이란 말인가, 살려준것만 해도 고마운 거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다시 고양이 얘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고양이가 아사직전에 먹이를 어떻게 겨우 한번 얻어먹었다고 치자.
죽다 살아났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먹이가 없어서 아사직전의 고통을 또 겪는다
그리고 다시 먹이를 조금 구했다.


"......아사직전의 고통-먹이 쪼끔-아사직전의 고통-먹이 쪼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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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바로 '고문'이라는 걸 할 때 쓰는 방법이잖아.
죽기직전까지 물에 담궜다가 숨넘어가기 직전에 꺼내주고..

그래서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손을 내밀면 안되는 것이다.
동정심으로 잠깐 도와준 것이 결과적으로 상대에겐 고통의 연장이 될수도 있으니까.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고통스런 유예기간만 늘린다는거, 정말 잔인한 짓 아닌가?







고양이에 관해선 그나마 단순히 먹고 사느냐 못먹고 죽느냐의 문제지만
그저 배부른 걸로만 만족하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란 동물의 경우는 좀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까..
자살을 해버리는 사람과 자살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자살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물론.. 말려야 겠지만
아무말 없이 자살을 해버리는 사람에 대해 고작 '죽을 각오로 살지 ㅉㅉ'라고 말해버리는 건
참 경솔하다.

자살이란 걸 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고 있는 그외 나머지들도 두 종류가 있다.
자기 꿈에 취해서 정말 살맛나는 사람들(부럽다..)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사람들(어떤 못된 인간들은 이 부류의 사람들을 생각없는'돼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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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1.꿈이 없고 2.때문에 단조로운  매일매일을 견뎌나가기가 죽음보다 힘겨우니까
아무말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거겠지.

따라서
그에게 살아갈 어떤 희망이나 보람, 꿈같은 걸 제시해주지 못한다면(근데 이건 어차피 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함부로 '그래도 살아야 돼!!'라는 말따위를 해선 안된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멋대로 살려놓고는
'자, 이제부터 죽을각오로 다시 사는거야!!'라고 말하는 건 정말 잔인한 짓이니까.

그에게 견뎌야 할 고통의 시간을 꼼꼼히 챙겨준 게 대체 뭐가 그리 당당한 건지..








하지만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바로..
'살다보니 없던 삶의 의미가 새로 돋아났네~'
즉, 미래라는 불확실성 속에 감춰져 있을지도 모를 어떤 희망이 바로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마약이지 ㅎ

마찬가지로 예의 그 고양이들 이야기도..
그 날 아침 창문에서 그 떠돌이 고양이 두녀석을 우연히 발견한 내가
부리나케 달려나가서 먹이를 주고 녀석들은 잠시나마 허기를 달랬는데
그 후 길모퉁이를 돌아서서 계속 걸어가던 그녀석들이
뜻밖에 어느 마음씨좋은 동네아저씨를 만나서
안정적인 먹이공급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종류의 이야기로 끝날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들의 삶의 의미는 먹을 것)


그러니까 길에서 혹 굶주린 고양이를 만났을 때 정말 어쩌지도 못하겠다면
그땐 그냥 동전 던져보는 게 최선.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라고 했으니까 ㅎ

Posted by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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