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쉬 페이션트 (The English Patient 1996년)


- 배경음악 : As Far As Florence -
          
 

* 주연 : 랄프 파인즈(알마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캐서린), 줄리엣 비노쉬(한나)

* 감독 : 안소니 밍겔라

* 주요 수상
    제69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줄리엣 비노쉬), 미술감독상, 의상상, 작곡상(드라마), 촬영상, 편집상, 음향상
    제54회 골든글러브 작품상, 음악상

* 50자평 : 천개의 절망을 이기는 단 하나의 약속... 영화를 보고 난 후 몇 달동안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My darling, I'm waiting for you.
(내 사랑,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How long is a day in the dark, or a week?
(어둥 속에 있던게 하루? 아니면 일주일?)
The fire is gone now, and I'm horribly cold.
(이제 불도 꺼지고 너무나 추워요.)
I really ought to drag myself outside, but then there would be the sun.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해가 있을 텐데.)
I'm afraid I waste the light on the paintings and on writing these words.
(그림과 편지를 쓰느라 전등을 너무 허비했나 봐요.)

We die, we die rich with lovers and tribes, tastes we have swallowed.
(우린 죽어요. 우리가 맛보았던 것들, 연인들, 사람들과 함께요.)
Bodies we have entered and swum up like rivers.
(강물처럼 우리가 들어가 유영했던 육체들.)
Fears we have hidden in like this wretched cave.
(이 무서운 동굴처럼 우리가 숨겨왔던 두려움들.)
I want all this marked on my body.
(내 몸에 이 모든 자취를 남기고 싶어요.)
We are the real countries, not the boundaries drawn on maps with the names of powerful men.
(권력자들의 이름으로 지도에 그려진 경계선이 없는 우리가 진정한 국가예요.)
I know you will come and carry me out into the palace of winds.
(전 당신이 돌아와서 바람의 궁전으로 데리고 갈거란 걸 알아요.)
That's all I've wanted to walk in such a place with you, with friends, on earth without maps.
(내가 바라는 전부는 지도가 없는 땅, 그곳에서 당신과 친구들과 함께 걷는 것이죠.)

The lamp's gone out and I'm writing in the darknes...
(전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 캐서린이 동굴 속에서 죽기 전 알마시에게 쓴 마지막 편지 -


두사람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아래로 보여지는 사막은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합니다. 실제의 사막은 가끔 야자수와 오아시스, 그리고 낙타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거친 모래와 전갈만이 기어다니는 황량한,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일 뿐입니다. 사막도, 모래바람도 항상 있는 그 곳에 있지만, 인간은 그곳까지 기어 들어가서는 빼앗고, 탈선하고, 죽어갑니다. 슬픈 일입니다. 어쨌든 사막의 모래곡선은 마치 여자의 몸매같아 에로틱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분명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낸 많은 장치들과 상황설정은 어느 누구도 불륜이라는 죄명으로 캐서린과 알마시를 비난할 수 없게끔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마시 때문에 두 엄지 손가락을 잘려야만 했던 카라바지오마저도 비극적인 그들의 사랑를 알고난 후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사막의 모래곡선은 우리가 알고 있던 사막의 황량한 이미지를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시킨다.

사실상 불륜의 사랑.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던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그들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르는척, 아닌척 그렇게 애써 봤지만, 상황은 그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결국 두 사람은 더이상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 계기가 되어준 것은 모래폭풍이었습니다. 그 속에 두사람이 고립되어 보낸 시간은 그 두사람에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고, 동시에 가장 곤혹스럽고 불행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알마시가 자신의 존재를 애써 밝히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그저 English Patient로 불렸던 것은 캐서린이 없는 그에겐 국적도, 나이도, 이름도, 연명하고 있는 목숨조차도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랑했던 기억만이 소중할 뿐이고 3일안에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혼자서 죽어가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상처만이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얼굴도, 국적도, 나이도, 이름도 확일 할 길이 없어 English Patient라 불리는 남자를 정성으로 간호하는 한나에게 아무런 희망도 의지도 갖지 않던 알마시는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며 결국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그녀 역시 운명같은 사랑을 믿기에 간호사이지만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은 두사람의 마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나가 목숨을 다하는 순간까지 이 English Patient라 불리웠던 남자의 애절한 사랑을 기억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전쟁 속에 핀 사랑의 영화일 뿐 아니라 해체자들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금 그어 놓은 자의 경계선을 해체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국가와 제도, 그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괴로워하고 있는지 우리는 그 경우를 헤아리 수 없습니다. 영화는 그 규범의 위험한 경계에서 줄다라기를 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막의 황량한 모래바람을 펼쳐 보여주는 몇몇 영화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 막막한 황량함과 거칠음은 세련된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를 길 떠남의 유혹으로 이끌기도 하고,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원시와 근원으로의 여행을 권유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막은 순수의 공간이며, 예수가 금식하며 사탄을 물리친 악과 선이 싸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막은 우리의 순수와 원형질을 찾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알마시가 말했던 것처럼 심장이 불을 가진 기관이라고 한다면 사막은 바로 대지의 심장입니다. 사막은 언제나 태양 아래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은 그 정열로도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길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도 사막처럼 길을 잃고 동시에 찾게 하는 역설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는 길 잃은 자, 아니 새로운 길을 다시 찾은 자가 있습니다. 지도를 만드는 자, 아니 스스로 지도가 된 자 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아픈 사랑은 사막의 모래푹풍이 거칠게 불던 날 시작되었다.

알마시는 국가간의 이권과 관계되는 체제 권력의 헤게모니 속에서 아프리카 지도를 만듭니다. 그가 사막을 떠돌며 지도를 만드는 것은 어떤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헤르도토스의 역사책처럼 우연과 팔연이 만들어 가는 삶의 지형도를 찾기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마지막에 가서 캐서린의 육체에서 진정한 자신의 지도를 찾게 됩니다. 캐서린의 '쇄골절흔'을 '알마시 협곡'이라 부름으로서 캐서린의 육체는 이미 그에게 하나의 지도이며 탐험의 대지 그 자체가 되엇습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제국주의가 갖는 영토에 대한 패권다툼이 낭만적 사랑 앞에서 어떻게 패배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알마시는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지도를 만들지만,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방랑기와 모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동굴에서 자신을 기다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만든 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렇게 캐서린에 대한 사랑 앞에서 국가, 국적, 영토는 무의미할 뿐이었습니다.

지도는 금을 긋고 이해관계를 설정하는 기초적인 것입니다. 너와 나의 땅을 구분하고 편을 가르기 위한 금을 긋기 위해 국가는 지도를 만들며 그 지도의 확장을 위해 전쟁도 불사합니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은 바로 그 금을 지우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들 자신이 국가이기 때문에 지도를 그리며 영토를 넓힐 필요가 없습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국적의 경계를 해체합니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 속에 또 하나의 종속된 주제가 병치되어 진행되는데 킴과 하나의 사랑입니다. 킴과 한나는 서로 다른 국적과 민족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경계 해체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장면은 영화 처음 부분에 나오는 수영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그 붓끝에 대한 집중입니다. 과연 그 붓은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 동굴, 그 속에서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으로 수영하는 사람들의 무리. 오직 사막과 모래푹풍과 먼지로 가득 찬 건조함만이 가득한 것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물 속의 유영을 보여줍니다. 사막이 품고 있는 연못, 그것이 바로 수영하는 사람들을 그려 놓은 동굴 입니다.

알마시가 비행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완성하듯 캐서린은 수영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물, 물고기, 수영, 목욕 등 물과 관련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벽화가 가득한 그 동굴에서 죽게 됩니다. 동굴은 사막이 간직하고 있는 샘이며 연못입니다. 이곳에서 자유로운 유영을 즐기며 영혼의 완벽한 자유를 꿈꿀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 킵이 밧줄을 이용하여 한나에게 성당의 벽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요?'
'지금요'
'가장 불행했던 때는?'
'지금요.'

캐더린이 여전히 사막의 모래알갱이가 가시지 않은 알마시의 머리를 감겨줄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그들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불과 같은 사랑은 위험한 것이어서 결국 사랑하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가장 친했던 친구와 종국에는 자신도 죽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사막은 그에게 사랑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계를 넘어, 경계를 해체하고 자신을 불태우는 그들의 사랑에 가슴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바보같은 이걸(골무) 언제나 걸고 다녔죠. 언제나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 말이 끝나자 장엄한 사운드와 함께 알마시는 오열하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물을 흘립니다. 골무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상징물과 같습니다. 이 대사는 캐서린의 알마시에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알마시의 사랑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같은 것이어서 사랑을 얻기 위해 보채는 아이와 다름없었다면 캐더린은 언제나 알마시보다 더한 고통을 지니고 견뎌왔던 여인이었습니다. 어?든 그녀는 이미 결혼한 남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마시가 캐서린을 동굴로 옮기면서 울었던 것은 아마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이 미안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소유를 가장 싫어한다고 했지만, 소유하고픈 욕망으로 타인과 춤을 추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고, '쇄골절흔'은 '알마시의 협곡'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자신과의 만남을 끝낼려고 했을 때, 그것은 그를 향한 사랑 자체를 끝내겠다는 뜻이 아니었음을 그 순간에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속삭이듯 말한다... 'I always love you.'

'I know you will come and carry me out into the palace of winds.'

캐서린은 알마시가 동굴에서 떠나기 전 반드시 돌아와 달라는 약속을 강요하지만, 그가 시간안에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그녀가 죽은 뒤에라도 그가 올 것임을 기대하며 죽어가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불빛도 사라진 어둡고 두려운 동굴 속에서 자신의 숨소리가 약해져감을 느끼며, 천개의 절망만 존재하는 가운데 그래도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란 단 한개의 희망은 죽음에 임박한 육체의 고통을 참아내게 하는 어떤 잔인한 고집 같은게 보이기도 합니다. 죽기 전에 이미 꺼져버린 빛, 아무 소리도 없는 깊은 동굴. 언제 돌아올지 모르지만 꼭 돌아올 것을 아는 사람을 기다리는 심정. 그때 캐더린이 느꼈을 고독감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그들의 아픈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아니라 칼날이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은 '아픔'입니다. '많이 봤고, 단순히 영화일 뿐인데...'란 인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고 난 후엔 여지없이 몇 달을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아픈 사랑을 주제로한 다른 영화에 대해선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왜 그런지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정리하기 위해 다시 본고 난 지금... 난 또 몇 달을 그 후유증에 시달릴 겁니다. 아낌없는 이들의 사랑을 한번쯤 해봤으면 하지만, 불륜이기에 찾아오지 말기를 바라는 이중성 때문일까 싶기도 하고, 당시 이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English Patient Fever(EPF)'라는 신드롬이 생겼다던데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비행.



 


 

출처 : http://blog.daum.net/ranssy1675819/13879175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클래식영화란 게 있다면

나에게는 잉글리쉬페이션트가 클래식이다.

이 영화를 본, 내 또래 내 주변세대분들 중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몇 있지 않을까..

아무튼 그때문에 한때는 알마시역을 한 랄프파인즈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라고 생각한적도 있다.

영화라는 건 정말..대단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온 작품이라서..


3월 18일 안소니 밍겔라 감독 사망.

Posted by Nav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