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환희가 자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자기 자는 모습을 촬영해서 보는 것 만큼 무서운 게 없다는 얘길 들은 적도 있지만..;;)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눈 주변이 파르르 파르르 움직인다.
(사진은 그 당시 찍은 게 아니고, 잘 자고 있을 때 그냥 찍은 거)

그러다가 뭐에 놀란 것처럼 부시시 깨더니, 옆에 앉아 있던 날보고 '냐~'하며 다가와선
내 다리위에 올라와 웅크린다.


옛날에, 희동이녀석이 아주 어릴 때, 이런 일이 잦았다.
사람 아기들이 자다가 놀라 깨서 우는 것처럼, 희동이 녀석도 자다가 깨서 두리번거리고 울고 그랬는데
보아하니 환희도 자면서 꿈이라도 꿨나보다.
그렇다곤 해도 무려 8살(2006년에 5살이었으므로 2009년엔 8살이다. 정확한 생일은 불명)인 '어른'고양이가
창피하지도 않나, 
어린이가 울면서 엄마찾듯이 나한테 달라붙어서 징징대다니..

하지만 나 역시 그래.






몇 년 전에 그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저녁시간에 엘리베이터에 혼자 갇힌 일이 있다.

난 원래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거의 항상 '추락'이라는 상황을 생각한다.
생각을 하면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이 더 많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추락'이란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왠만하면 계단을 이용하는 편이고..
그나마 함께 탄 사람이 있으면 좀 안심하는데 그건 아마
'마지막 순간에 다른 사람들 틈에 내몸을 잽싸게 끼워넣으면 추락의 어마어마한 충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 같은
말도 안되는 야비한 계산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아무튼 그때는 혼자 갇혔다.
비상계단 불이 다 꺼진 저녁시간이라서 눈 딱 감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 엘리베이터가 도중에 멈춰버렸다.
그나마 지하 2층 건물에서 지하1층과 지상1층 중간쯤이니깐
(엘리베이터의 구조는 잘 모르지만) 바닥에서 2층.. 6,7m정도의 높이에 매달려 있었던 걸까..?
그리 높진 않지만 어차피 떨어질 땐 나 혼자 떨어지는 게 아니고 육.중.한 엘리베이터랑 함께 떨어지는 것이므로
내가 받는 충격은 엘리베이터 무게만큼이 더해진 것일테고 그렇다면 난...
죽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어마어마한 공포가 몰려 왔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비상버튼은 이미 눌렀지만 경비실과 연락은 되지 않았다.(대한민국의 소방안전이란 원래 이따위 수준인거야?)
다급한 마음에 건물안에 있을 다른 동료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고
당시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분명 '울먹'이면서 말을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이 너무나 창피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앞에 두고 있었으니깐 뭐..;;;;
사실, 죽음 자체보다는 죽기 직전에 엄습해 오는 죽음의 그림자.. 죽음의 흐릿한 모습이 보이는거,
공포는 바로 거기서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라는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이 영화 역시 그런 부분(공포는 죽음 자체가 아닌 죽음의 예감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에서 설득력을 가지는 영화임에 분명할 거라고..

어쨌든 그 상황에서 점점 긴장을 하다보니 다리에 힘도 빠지고 정말..
주저 앉아서 '날 구해줘 HELP !!'라고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와중에
겨우겨우 연락이 닿은 경비아저씨랑 건물 관리하는 분들이
1층과 지하1층 사이에 반쯤 걸린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서
날 꺼내주셨다.
난 거의 기다시피 해서(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있었으므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고
건물안에서 오고가던 몇 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야릇한  내 모습을, 타인의 그 괴상한 오버액션을..
재밌다는 듯이, 그리고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멀쩡한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어.나오고 얼굴은 분명 눈물콧물로 범벅이 돼 있었을 듯, 그나마 실내가 어두워서 다행.. ㅠㅠ)


겨우 몸을 추스리고 올라와서 하던 일을 계속했는데
내 바로 위에 상사가... 방금 전 일어난 그 사건을 들었는지..
업무보고 하러 온 나에게
'근데 말이야, 어른이 돼 가지고 부끄럽지도 않나, 엘리베이터 좀 갇혔다고 울고 불고...지챋ㅍ;ㅁㅜㅊㄷㅇ재'
이런 말을 하네.......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아래.. ↓ 와 같은 이미지였는데..




하지만 난 평범한 일상에 다시 안착해 있는 이성적인 '어른'이므로 저런 흉악한↑ 영상은 얼릉 지우고
그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물러나왔을 뿐이다...






어른이라고 무섭지 않다는 법도 없는데..
그렇다고 저 때의 내 행동처럼 택도없이 오버하는 건...
그래, 지금 생각하면 분명 창피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그런 막연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엄습'해 올만한 그런 환경이었다.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오버하게 된 걸 거라고.
하지만 이런 저런 상황의 문제를 떠나서..
'어른이 말이야 ㅉㅉ'라는 말로,
어른이란 언제나 정신줄 단단히 잡고, 모든 걸 달관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건..
참 피곤하다.
어른이라고 뭐 별건가..
(어른도 악몽 꾸고 무서워 하면서 깰 수 있다고.... 환희 화이팅!!)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하다보니 걱정되는게..
그나마 혼자 갇히면 혼자 망신당하고 말겠는데
(지금이라면 엘리베이터에 갇힌다고 저 정도까지 격하게 난리를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어린이랑 함께 갇히면 어떡하나.. 믿음직한 어른이 돼 주지 못하면 어떡하나..

어린이가 함께 있기 때문에 뜻밖의 책임감이 발휘돼서 의젓하게 행동하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고 장국영의 출연작 '금지옥엽'에도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건'이 나온다.
영화 처음이랑 마지막에...



Posted by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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